궁궐 서고

조선의 조정은 어떻게 돌아갔을까

의정부와 육조, 그리고 임금 곁의 관청들

임금 아래 두 기둥, 의정부와 육조

조선의 나랏일은 크게 두 층으로 나뉘었어요.위에는 의정부가 있어 나라의 큰 방향을 의논했고, 아래에는 육조가 있어 실제 일을 나누어 맡았어요.

의정부는 영의정, 좌의정, 우의정 세 정승이 이끌었어요.셋 모두 정1품으로, 신하가 오를 수 있는 가장 높은 자리였어요.

영의정좌의정우의정

일을 나누어 맡은 여섯 관청, 육조

육조는 이조, 호조, 예조, 병조, 형조, 공조의 여섯 관청이에요.각 조의 우두머리를 판서라고 불렀고, 판서는 정2품이었어요.

이조는 문관 인사, 호조는 인구와 세금 같은 나라 살림, 예조는 의례와 외교와 과거 시험, 병조는 군사와 무관 인사, 형조는 법과 재판, 공조는 건축과 수공업을 맡았어요.오늘날의 정부 부처와 비슷한 구조예요.

이조판서호조판서예조판서병조판서형조판서공조판서

정승이 먼저 볼까, 판서가 바로 올릴까

육조의 일을 임금께 올리는 방식은 시기에 따라 달랐어요.의정부가 먼저 검토한 뒤 임금께 올리는 방식을 의정부서사제, 육조가 임금께 바로 올리는 방식을 육조직계제라고 해요.

태종과 세조는 임금이 직접 일을 챙기는 육조직계제를 택했고, 세종은 1436년에 의정부서사제를 다시 시행해 정승들이 먼저 의논하게 했어요.다만 인사와 군사 같은 일은 여전히 임금께 바로 올렸어요.누가 먼저 보고를 받느냐가 곧 권력의 무게였던 셈이에요.

임금 곁을 지킨 관청들

승정원은 임금의 명령을 신하들에게 전하고 신하들의 보고를 임금께 올리는 비서 기관이었어요.그 우두머리가 도승지예요.

예문관의 전임 사관들은 임금 곁에서 나랏일을 기록했어요.이 기록은 훗날 《조선왕조실록》의 바탕이 되었어요.임금의 몸을 돌본 내의원, 나라의 그림을 그린 도화서, 임금을 호위한 내금위도 모두 임금 가까이에서 일한 곳이에요.

도승지사관어의화원내금위장

권력을 견제한 삼사

사헌부, 사간원, 홍문관을 합쳐 삼사라고 불렀어요.사헌부는 관리들의 잘못을 살폈고, 사간원은 임금에게 바른말을 올렸고, 홍문관은 학문을 연구하며 임금의 자문에 응했어요.

삼사의 관리들은 벼슬이 아주 높지 않아도 정승이나 임금의 잘못을 지적하는 것이 맡은 일이었어요.조정 안에서 권력이 한쪽으로 쏠리지 않게 하는 장치였어요.

조정 밖으로 나간 사람들

지방은 관찰사와 고을 수령이 다스렸어요.임금은 수령들이 백성을 잘 돌보는지 확인하려고 암행어사를 몰래 보내기도 했어요.

궁궐 안 살림은 궁녀들이 맡았어요.오랜 세월 일한 궁녀는 상궁이 되어 소주방(궁중 부엌)이나 침방 같은 처소의 일을 이끌었어요.

암행어사최고상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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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의정부」,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육조」,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삼사」